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브랜드는 명성과 시장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게 많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하며 노하우가 유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브랜드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할 때,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비밀이 없습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의 오렐리앙 발랑스(Aurélien Valance) 부사장이 한국의 와인 전문가들 앞에서 단언한 말이다. 에노테카코리아가 마련한 샤토 마고 마스터클래스에서 그가 전달한 내용 또한 그 말과 다르지 않았다. 2001년 샤토 마고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2006년 본격적으로 합류한 오렐리앙 발랑스는 현재 총괄 부사장으로 와이너리의 전반을 지휘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이자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샤토 마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와인을 만드는지 상세한 내용을 공유했다. 그의 말대로 비밀은 없었다.

[샤토 마고의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
현재 샤토 마고는 9개 샤토가 함께하는 모임 '클럽 오브 나인(Club of Nine)'에 소속돼 있다. 샤토 마고를 포함해 5대 샤토로 불리는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오 브리옹(Chateau Haut-Brion),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있고, 이외에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 샤토 오존(Chateau Ausone),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이 함께한다. 모두 보르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와이너리들이자 수집가들이 주목하는 이름이다. 9개 샤토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보르도 지역의 미세 기후와 테루아에 관해 과학적인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며 품질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5세기에 이르는 긴 와인 생산 역사가 있는 샤토 마고는 메독 지역에서 일찌감치 최고의 밭을 선점해 개발할 수 있었고, 이후 1855년 공식적인 등급 분류를 통해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등급 분류는 샤토에 대한 것이었고, 토지에 대한 분류가 아니었기에 원한다면 마고 AOC 내에서 포도밭을 더 확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부유층이 샤토 마고를 소유해 왔고, 명성을 유지하며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43년간 와이너리를 이끌었던 코린 멘첼로풀로스(Corinne Mentzelopoulos)가 2023년 은퇴하고, 두 자녀들이 가족 경영으로 샤토 마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은 사토 마고가 400여 년 동안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며 같은 테루아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7세기에 샤토 마고에서 약 40년을 근무했던 관리자가 은퇴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긴 책이 있습니다. 포도밭의 각 구획과 양조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죠. 그 자료를 보면 당시에도 수확 시기나 양조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이미 세컨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실험을 계속합니다. 25년 전부터는 연구에만 전념하는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고, 매년 국제적으로 7명의 학생을 선발해 연구 과제를 진행합니다.”

[샤토 마고]
샤토 마고는 약 80헥타르의 포도원을 100개의 세부 구획으로 나눠 관리한다. 포도밭 관리에서 첫 번째 목표는 “100개 구획에서 100가지 최상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각 구획의 특징과 스타일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샤토 마고에서는 1월과 2월, 매주 수요일에 테크니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하는데, 긴 테이블에 100개 구획에서 생산한 100잔의 와인을 모두 올려두고 어떤 와인을 블렌딩할지 결정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집중도와 부드러운 타닌이다. 테이스팅을 통해 결정한 와인 30% 정도를 샤토 마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약 25%는 샤토 마고의 세컨드 와인인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Pavillon Rouge du Chateau Margaux)를 만든다. 나머지는 서드 와인인 마고 뒤 샤토 마고(Margaux du Chateau Margaux)를 생산하고, 서드 와인까지 만든 뒤 남는 15% 정도 와인은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샤토 마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까다로운 셀렉션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82년만 해도 총 생산량의 75% 정도가 샤토 마고였고 나머지로 세컨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이런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했고, 특히 2009년부터는 파비용 루즈를 만드는 데도 엄격한 셀렉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구획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순수하게 테이스팅에 따른 결정이기에 어느 구획의 와인이 선택될지 알 수 없고, 그 결과도 매년 달라진다.
물론 구획에 따라 다른 양조 방식을 적용하기도 하고, 다른 품종들을 함께 식재해 수십 년에 걸쳐 품질을 비교하는 실험도 한다. 최근에는 특정 구획에서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품종을 알아보는 장기 실험도 진행 중이다. 양조에서는 2018년부터 인공지능을 도입해 타닌과 안토시아닌의 추출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시점에 펌핑 오버를 중단해 정제되고 부드러운 타닌의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든다.
또한 샤토 마고는 2008년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 재배를 시험적으로 도입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오가닉 재배를 하고 있다. '샤토 마고'라는 이름에 굳이 유기농 인증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유기농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하는데 인증을 받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판단해 2022년 오가닉 인증도 받았다. 포도원의 새로운 구획에서는 컨설턴트와 함께 바이오다이내믹 농법도 실험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바이오다이내믹으로 재배하는 방향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샤토 마고의 자부심이 담긴 화이트 와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
존재 자체로 특별한 화이트 와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Pavillon Blanc du Chateau Margaux)는 샤토 마고의 오랜 전통으로 생산되는 와인이다. 17세기부터 꾸준히 생산해왔고, 샤토 마고 뱅 드 소비뇽(Chateau Margaux vin de Sauvignon)이라 불리다가 1920년 당시 소유주가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마고 AOC가 지정됐을 때 샤토 마고는 유일하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AOC 규정상 레드 와인 생산만 허용됐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에는 '마고'를 붙일 수 없지만 그 이전부터 생산하던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와인은 세미용을 사용하지 않은 100% 소비뇽 블랑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약 11헥타르의 포도원에서 소비뇽 블랑을 재배하며 포도나무의 수령은 50년 이상이다. 20개의 구획으로 나눠 관리하고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연간 1만 병에서 1만 2천 병 정도만 생산하고 있다. 샤토 마고에서 추구하는 소비뇽 블랑의 스타일은 강한 풀내음이나 풋풋한 채소 향이 아니라, 복합적인 아로마와 함께 꽃 향기가 풍부하고 미네랄리티가 뛰어난 스타일이다. 특히 20년에서 40년까지 장기 숙성이 가능한 소비뇽 블랑을 지향한다.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시음한 2018 빈티지는 굉장히 온화했던 해로 꼽힌다. 하지만 신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복숭아와 자몽 등 풍부한 과일 아로마에 아몬드와 허브 뉘앙스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와인을 만들었다. 시음해 보면 많은 애호가들에게 가장 세련된 보르도 화이트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바토나주를 시행했고, 8개월간 오크 숙성 후 병입했는데 새 오크의 비율은 25% 정도다. 원래는 30% 정도 새 오크를 사용했지만 소비뇽 블랑이 오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종이기 때문에 사용 비율을 조정했다고 한다.
발랑스 부사장은 “최근 1979년산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는데 45년 이상 숙성된 와인임에도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모두 10년 정도 숙성됐을 것으로 추측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원래 투병한 보틀에 생산하던 와인을 몇 년 전부터 어두운 보틀로 변경했고 20여 년간의 실험을 거쳐 디암 코르크로 변경했다는 정보도 공유했다.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는 2022년 빈티지부터 세컨드 와인도 출시한다. 이는 5세기의 역사를 이어온 샤토 마고에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와인이다.

[(왼쪽부터)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 2018,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 2018, 샤토 마고 2019, 샤토 마고 2009]
또 하나의 마고,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는 앞서 소개한 테크니컬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따라 생산되는 샤토 마고의 세컨드 와인이다. 17세기부터 세컨드 와인을 생산했지만 지금의 이름으로 첫 출시한 것은 1908년이다. 포도를 재배할 때 구획에 따라 생산할 와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컨드 와인도 샤토 마고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한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샤토 마고의 모든 기술력이 동일하게 반영된 와인이므로 시장에서도 단순한 세컨드 와인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음한 2018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69%, 메를로 19%, 쁘띠 베르도 9%, 카베르네 프랑 3%를 블렌딩했다. 샤토 마고는 최대 10%까지만 메를로를 사용하는 반면,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는 메를로의 비중이 좀 더 높은 것이 특징이다. 60% 정도 새 오크를 사용하며 약 18개월간 숙성한다. 2018 빈티지는 포도알이 평소보다 더 작았고 그만큼 양조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해였다고 한다. 타닌이 과하게 추출되지 않도록 정교한 작업을 통해 공격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타닌을 갖춘 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풍부한 검은 과일과 뛰어난 구조감, 산미의 균형이 좋은 와인이다. 강렬하고 힘 있는 스타일로 긴 여운과 뛰어난 집중도가 인상적이다.
진정한 클래식, 샤토 마고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샤토 마고 2009 빈티지와 2019 빈티지를 함께 선보였다. 2009년산은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이 지금 마시기 좋은 빈티지로 선정해 직접 한국에 가져온 와인이고, 2019 빈티지는 세계적인 와인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은 와인이다. 둘 다 그레이트 빈티지로 꼽히는데, 건조했고 더웠던 기후조건도 비슷했기 때문에 10년의 숙성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음이었다.
2009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87%, 메를로 9%, 카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2%를 사용했고, 2019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0%, 메를로 7%, 카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1%를 사용했다. 배럴에서 21개월간 숙성하고 클래식한 방식으로 양조해 샤토 마고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흔히 샤토 마고를 두고 우아한 여왕 같은 와인이란 수식어를 쓰는데, 마고에 기대하는 꽃향과 풍부한 과실 풍미, 허브와 향신료 아로마 외에도 좋은 타닌과 함께 파워풀한 면모도 느껴진다. 특히 2019 빈티지의 경우 신선하면서 집중도와 접근성이 뛰어나 아직 어린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디캔팅을 통해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질감에서도 매혹적인 느낌을 전한다. 발랑스 부사장은 샤토 마고에서 보관 중인 가장 오래된 빈티지가 1855년이라며 “1세기 정도 거뜬히 숙성할 수 있는 와인으로 생각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샤토 마고의 중요한 원칙 한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와이너리를 인수하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의 추가적인 사업에는 아예 손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직 최상의 샤토 마고 와인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명품'으로 불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의 신념이자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기사 원문 :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20418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브랜드는 명성과 시장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게 많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하며 노하우가 유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브랜드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할 때,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비밀이 없습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의 오렐리앙 발랑스(Aurélien Valance) 부사장이 한국의 와인 전문가들 앞에서 단언한 말이다. 에노테카코리아가 마련한 샤토 마고 마스터클래스에서 그가 전달한 내용 또한 그 말과 다르지 않았다. 2001년 샤토 마고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2006년 본격적으로 합류한 오렐리앙 발랑스는 현재 총괄 부사장으로 와이너리의 전반을 지휘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이자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샤토 마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와인을 만드는지 상세한 내용을 공유했다. 그의 말대로 비밀은 없었다.
[샤토 마고의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
현재 샤토 마고는 9개 샤토가 함께하는 모임 '클럽 오브 나인(Club of Nine)'에 소속돼 있다. 샤토 마고를 포함해 5대 샤토로 불리는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오 브리옹(Chateau Haut-Brion),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있고, 이외에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 샤토 오존(Chateau Ausone),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이 함께한다. 모두 보르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와이너리들이자 수집가들이 주목하는 이름이다. 9개 샤토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보르도 지역의 미세 기후와 테루아에 관해 과학적인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며 품질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5세기에 이르는 긴 와인 생산 역사가 있는 샤토 마고는 메독 지역에서 일찌감치 최고의 밭을 선점해 개발할 수 있었고, 이후 1855년 공식적인 등급 분류를 통해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등급 분류는 샤토에 대한 것이었고, 토지에 대한 분류가 아니었기에 원한다면 마고 AOC 내에서 포도밭을 더 확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부유층이 샤토 마고를 소유해 왔고, 명성을 유지하며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43년간 와이너리를 이끌었던 코린 멘첼로풀로스(Corinne Mentzelopoulos)가 2023년 은퇴하고, 두 자녀들이 가족 경영으로 샤토 마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은 사토 마고가 400여 년 동안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며 같은 테루아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7세기에 샤토 마고에서 약 40년을 근무했던 관리자가 은퇴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긴 책이 있습니다. 포도밭의 각 구획과 양조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죠. 그 자료를 보면 당시에도 수확 시기나 양조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이미 세컨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실험을 계속합니다. 25년 전부터는 연구에만 전념하는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고, 매년 국제적으로 7명의 학생을 선발해 연구 과제를 진행합니다.”
[샤토 마고]
샤토 마고는 약 80헥타르의 포도원을 100개의 세부 구획으로 나눠 관리한다. 포도밭 관리에서 첫 번째 목표는 “100개 구획에서 100가지 최상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각 구획의 특징과 스타일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샤토 마고에서는 1월과 2월, 매주 수요일에 테크니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하는데, 긴 테이블에 100개 구획에서 생산한 100잔의 와인을 모두 올려두고 어떤 와인을 블렌딩할지 결정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집중도와 부드러운 타닌이다. 테이스팅을 통해 결정한 와인 30% 정도를 샤토 마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약 25%는 샤토 마고의 세컨드 와인인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Pavillon Rouge du Chateau Margaux)를 만든다. 나머지는 서드 와인인 마고 뒤 샤토 마고(Margaux du Chateau Margaux)를 생산하고, 서드 와인까지 만든 뒤 남는 15% 정도 와인은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샤토 마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까다로운 셀렉션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82년만 해도 총 생산량의 75% 정도가 샤토 마고였고 나머지로 세컨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이런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했고, 특히 2009년부터는 파비용 루즈를 만드는 데도 엄격한 셀렉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구획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순수하게 테이스팅에 따른 결정이기에 어느 구획의 와인이 선택될지 알 수 없고, 그 결과도 매년 달라진다.
물론 구획에 따라 다른 양조 방식을 적용하기도 하고, 다른 품종들을 함께 식재해 수십 년에 걸쳐 품질을 비교하는 실험도 한다. 최근에는 특정 구획에서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품종을 알아보는 장기 실험도 진행 중이다. 양조에서는 2018년부터 인공지능을 도입해 타닌과 안토시아닌의 추출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시점에 펌핑 오버를 중단해 정제되고 부드러운 타닌의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든다.
또한 샤토 마고는 2008년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 재배를 시험적으로 도입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오가닉 재배를 하고 있다. '샤토 마고'라는 이름에 굳이 유기농 인증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유기농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하는데 인증을 받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판단해 2022년 오가닉 인증도 받았다. 포도원의 새로운 구획에서는 컨설턴트와 함께 바이오다이내믹 농법도 실험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바이오다이내믹으로 재배하는 방향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샤토 마고의 자부심이 담긴 화이트 와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
존재 자체로 특별한 화이트 와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Pavillon Blanc du Chateau Margaux)는 샤토 마고의 오랜 전통으로 생산되는 와인이다. 17세기부터 꾸준히 생산해왔고, 샤토 마고 뱅 드 소비뇽(Chateau Margaux vin de Sauvignon)이라 불리다가 1920년 당시 소유주가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마고 AOC가 지정됐을 때 샤토 마고는 유일하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AOC 규정상 레드 와인 생산만 허용됐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에는 '마고'를 붙일 수 없지만 그 이전부터 생산하던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와인은 세미용을 사용하지 않은 100% 소비뇽 블랑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약 11헥타르의 포도원에서 소비뇽 블랑을 재배하며 포도나무의 수령은 50년 이상이다. 20개의 구획으로 나눠 관리하고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연간 1만 병에서 1만 2천 병 정도만 생산하고 있다. 샤토 마고에서 추구하는 소비뇽 블랑의 스타일은 강한 풀내음이나 풋풋한 채소 향이 아니라, 복합적인 아로마와 함께 꽃 향기가 풍부하고 미네랄리티가 뛰어난 스타일이다. 특히 20년에서 40년까지 장기 숙성이 가능한 소비뇽 블랑을 지향한다.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시음한 2018 빈티지는 굉장히 온화했던 해로 꼽힌다. 하지만 신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복숭아와 자몽 등 풍부한 과일 아로마에 아몬드와 허브 뉘앙스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와인을 만들었다. 시음해 보면 많은 애호가들에게 가장 세련된 보르도 화이트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바토나주를 시행했고, 8개월간 오크 숙성 후 병입했는데 새 오크의 비율은 25% 정도다. 원래는 30% 정도 새 오크를 사용했지만 소비뇽 블랑이 오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종이기 때문에 사용 비율을 조정했다고 한다.
발랑스 부사장은 “최근 1979년산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는데 45년 이상 숙성된 와인임에도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모두 10년 정도 숙성됐을 것으로 추측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원래 투병한 보틀에 생산하던 와인을 몇 년 전부터 어두운 보틀로 변경했고 20여 년간의 실험을 거쳐 디암 코르크로 변경했다는 정보도 공유했다.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는 2022년 빈티지부터 세컨드 와인도 출시한다. 이는 5세기의 역사를 이어온 샤토 마고에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와인이다.
[(왼쪽부터)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 2018,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 2018, 샤토 마고 2019, 샤토 마고 2009]
또 하나의 마고,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는 앞서 소개한 테크니컬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따라 생산되는 샤토 마고의 세컨드 와인이다. 17세기부터 세컨드 와인을 생산했지만 지금의 이름으로 첫 출시한 것은 1908년이다. 포도를 재배할 때 구획에 따라 생산할 와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컨드 와인도 샤토 마고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한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샤토 마고의 모든 기술력이 동일하게 반영된 와인이므로 시장에서도 단순한 세컨드 와인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음한 2018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69%, 메를로 19%, 쁘띠 베르도 9%, 카베르네 프랑 3%를 블렌딩했다. 샤토 마고는 최대 10%까지만 메를로를 사용하는 반면, 파비용 루즈 뒤 샤토 마고는 메를로의 비중이 좀 더 높은 것이 특징이다. 60% 정도 새 오크를 사용하며 약 18개월간 숙성한다. 2018 빈티지는 포도알이 평소보다 더 작았고 그만큼 양조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해였다고 한다. 타닌이 과하게 추출되지 않도록 정교한 작업을 통해 공격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타닌을 갖춘 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풍부한 검은 과일과 뛰어난 구조감, 산미의 균형이 좋은 와인이다. 강렬하고 힘 있는 스타일로 긴 여운과 뛰어난 집중도가 인상적이다.
진정한 클래식, 샤토 마고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샤토 마고 2009 빈티지와 2019 빈티지를 함께 선보였다. 2009년산은 오렐리앙 발랑스 부사장이 지금 마시기 좋은 빈티지로 선정해 직접 한국에 가져온 와인이고, 2019 빈티지는 세계적인 와인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은 와인이다. 둘 다 그레이트 빈티지로 꼽히는데, 건조했고 더웠던 기후조건도 비슷했기 때문에 10년의 숙성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음이었다.
2009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87%, 메를로 9%, 카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2%를 사용했고, 2019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0%, 메를로 7%, 카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1%를 사용했다. 배럴에서 21개월간 숙성하고 클래식한 방식으로 양조해 샤토 마고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흔히 샤토 마고를 두고 우아한 여왕 같은 와인이란 수식어를 쓰는데, 마고에 기대하는 꽃향과 풍부한 과실 풍미, 허브와 향신료 아로마 외에도 좋은 타닌과 함께 파워풀한 면모도 느껴진다. 특히 2019 빈티지의 경우 신선하면서 집중도와 접근성이 뛰어나 아직 어린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디캔팅을 통해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질감에서도 매혹적인 느낌을 전한다. 발랑스 부사장은 샤토 마고에서 보관 중인 가장 오래된 빈티지가 1855년이라며 “1세기 정도 거뜬히 숙성할 수 있는 와인으로 생각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샤토 마고의 중요한 원칙 한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와이너리를 인수하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의 추가적인 사업에는 아예 손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직 최상의 샤토 마고 와인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명품'으로 불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의 신념이자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기사 원문 :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