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r All Wine Lov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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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연주하는 바롤로 선율, 지오반니 로쏘(Giovanni Rosso)

“메시가 최고인가 호날두가 최고인가?” 뛰어난 유연함과 테크닉으로 수많은 골을 넣은 메시와 30대 후반에도 여전히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호날두간의 최고 선수(GOAT)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혹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취향을 넌지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조성진의 음악이 좋은가? 아니면 임윤찬의 음악이 더 좋은가?” 우아하면서도 단단한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와 대담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임윤찬의 연주는 각기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와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이 가능하다. 보르도 와인을 좋아하는가, 부르고뉴 와인을 더 선호하는가? 좀 더 깊게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바롤로의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와인을 더 좋아하는가, 라 모라(La Morra) 와인을 더 즐기는가?


바롤로 와인을 깊게 접하다 보면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 모라 마을이 있는 바롤로 서쪽은 주로 토르토니안(Tortonian) 시대의 토양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곳 출신 바롤로는 아로마가 더욱 다채롭고 어릴 때 마시기도 쉽다. 반면 세라룽가 달바 마을이 대표하는 바롤로 동쪽은 주로 헬베티안(Helvetian) 시대의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에서는 더욱 강인하고 구조감이 있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숙성 잠재력도 높다. 세라룽가 달바에 11개의 뛰어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지오반니 로쏘(Giovanni Rosso)의 와인을 접하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의 모든 와인에는 탄탄함이 느껴진다.


[바롤로 지역을 설명하는 지오반니 로쏘의 오너, 다비데 로쏘]


그런데 바롤로의 지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크고작은 수많은 언덕이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미세기후가 존재하며 특별한 언덕에서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와인이 생산된다. 지오반니 로쏘의 와인이 '완벽한 테루아의 분신'이라 칭송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소유한 특별한 크뤼에서 각기 다른 특성을 드러내는 인상적인 바롤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로쏘 가문의 4대손이자 현 오너인 다비데 로쏘(Davide Rosso)와 함께 그들의 다양한 바롤로를 테이스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특별히 이날엔 아시아 최대 와인 수입사 에노테카의 창립자인 히로세 야스히사도 함께 했다. 


지오반니 로쏘는 카날레(Canale) 가문 출신의 에스터(Ester)와 사랑에 빠지면서 1890년 세라룽가 달바에 그들만의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이 와이너리는 198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손으로 고품질 바롤로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정한 후 포도밭을 새롭게 구성하고, 각 포도밭의 테루아를 훌륭하게 표현하는 와인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바롤로의 로마네 꽁띠라고 불리는 비나리온다(Vignarioda), 세라룽가를 대표하는 또 다른 포도밭인 라 세라(La Serra)와 세레타(Cerretta) 등에서 생산된 특별한 바롤로는 수집가들의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세라룽가 달바(오른쪽)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모습. 왼쪽에 위치한 급격한 경사의 포도밭이 라 세라(La Serra)다 (출처: 지오반니 로쏘)]


2001년, 20대 중반부터 양조를 맡고 있는 다비데 로쏘의 와인메이킹 또한 이러한 인기에 한몫을 했다. 피에몬테와 보르도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부르고뉴 등 다양한 지역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온 다비데는 우아한 스타일의 양조 방식을 추구한다. 특히 바롤로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슬라보니안 오크 대신 프렌치 오크를 선호한다. 하지만 새 오크에서 만들어지는 강한 오크 뉘앙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제가 와인을 공부하던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는, 로버트 파커 스타일로 알려진 오크 향이 강한 와인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테루아가 느껴지는 섬세한 와인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그런 와인을 좋아하지 않았죠. 사실 그 시기에는 와인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세상은 변했고 지금은 소비자들이 저와 같은 스타일의 와인을 선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앞으로 20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저는 여전히 와인에는 테루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한때 와인 평론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모던 바롤로'와 '전통적인 바롤로'에 대한 구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오반니 로쏘의 와인은 그 중간에 있다고들 말합니다. 오랜 숙성이 필요하고 슬라보니안 오크를 주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바롤로는 아니죠. 하지만 저희는 프렌치 오크로 만든 50헥토리터의 푸드르(Foudres)를 사용합니다. 와인에 우아함을 더할 수 있지만 네비올로가 간직한 섬세함은 가리지 않아요. 그리고 세라룽가 달바의 와인은 기본적으로 숙성 잠재력이 좋지만, 출시 직후에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오반니 로쏘의 와인 4종]


다비데와 함께 4종의 네비올로 와인을 테이스팅했다. 한국에는 공식 수입사 에노테카 코리아가 아르네이스와 바르베라 와인도 함께 수입하고 있다.


지오반니 로쏘 랑게 네비올로(Giovanni Rosso Langhe Nebbiolo) 2021

바롤로에서 자라는 젊은 수령의 네비올로로 만드는 와인이다. 잘 익은 신선한 베리 풍미가 가득하며, 바롤로 고유의 건조한 꽃이나 잎의 뉘앙스도 찾아볼 수 있다. 뒷맛에 쌉쌀한 자몽 껍질 같은 느낌이 복합성을 더한다. 산도도 훌륭해 음식과의 조화 또한 상당히 좋을 듯싶다. 젊은 와인 애호가들이 바롤로로 향하는 여정의 첫 시작과 같은 와인이다. 레스토랑에서 글라스 와인으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2021년은 무척 좋은 빈티지로 랑게 네비올로 또한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지오반니 로쏘 바롤로(Giovanni Rosso Barolo) 2019

세라룽가 달바 외에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와 바롤로(Barolo) 마을까지 총 3곳 빌리지의 포도를 함께 사용했다. 이 마을들은 이어져 있지만 서쪽 바롤로도 포함하고 있어서 와인에 더욱 플로럴한 향과 부드러움이 더해진다. 영국의 유명한 수입사인 베리 브라더스&러드의 요청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인기가 좋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바롤로'가 선사하는 모든 모습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와인이다. 2019년 역시 바롤로에서 특출한 빈티지로 평가받는다.  


지오반니 로쏘 바롤로 델 코무네 디 세라룽가 달바(Giovanni Rosso Barolo Barolo del Commune di Serralunga d'Alba) 2019

지오반니 로쏘가 소유한 11개의 세라룽가 달바의 크뤼 중 6곳 포도밭의 포도로 만들었다. '세라룽가 달바' 바롤로의 참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는 네비올로의 라즈베리나 자두 향이 우선적이지만 검은 과일과 초콜릿의 뉘앙스가 더해진다. 맛도 한층 집중되고 질감이 두터우며 입안에서 복합성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산도와 타닌도 상당하여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지오반니 로쏘의 첫 번째 바롤로 와인이자, 가장 중요한 와인 중 하나다.


지오반니 로쏘 바롤로 세라(Giovanni Rosso Barolo Serra) 2019

세라룽가 달바 마을 바로 남쪽에 위치한 포도밭 라 세라(La Serra)의 싱글 빈야드(MGA) 와인이다. 세라는 이탈리아어로 산등성이(ridge)를 의미하며 세라룽가(Serralunga)라는 마을의 이름도 '긴 산등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오반니 로쏘가 소유한 최고의 포도밭 중 하나에서 나오는 만큼, 향에서부터 차이가 두드러진다. 훌륭한 세라룽가 달바 바롤로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향긋한 허브 뉘앙스를 함께 가지고 있다. 눈앞에 다양한 드라이플라워 꽃다발이 있는 듯하다. 맛에서도 탄탄한 구조감과 집중도가 느껴지고 과실 맛이 입안에 가득 흐른다. 매우 예쁘고 맛있는 '그랑 크뤼' 와인이다. 에노테카의 히로세 야스히사 고문도 “라이트하지만 강하고 탄탄하지만 지금 마시기에도 좋은 멋진 와인을 만들었다”며 다비데에게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지오반니 로쏘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다비데 로쏘, 에노테카의 창립자 히로세 야스히사]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두 천재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구별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조성진도 해석에 따라서 터프한 타건을 들려주며, 임윤찬도 때로는 무척 부드러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메시도 부드러운 발 터치가 매력적이지만 때로는 강력한 슈팅을 보여주기도 하고, 호날두도 수비수를 따돌리는 드리블은 매우 유연하고 부드럽다. 어떤 분야든 경지에 오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듯하다. 바롤로도 마찬가지다. 토양에 따라서 동쪽과 서쪽을 나누기도 하지만, 세라 같은 특별한 포도밭의 와인은 동쪽의 강인함과 서쪽의 향긋함을 함께 보여준다. 물론 이는 그냥 얻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노력과 연습 끝에 경지에 오른 예술가와 운동선수처럼, 이들도 무수한 시행착오와 노력을 거쳐 이러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지오반니 로쏘 와인에서 중후한 타건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기사 원문 :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19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