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r All Wine Lov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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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오 코뇨, 피에몬테의 전통과 혁신이 만들어낸 우아함

엘비오 코뇨(Elvio Cogno)의 오너 와인메이커인 발터 피소레(Valter Fissore)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6년. 그때 처음 맛본 엘비오 코뇨의 바롤로(Barolo) 맛에 반해 2018년 피에몬테(Piemote)로 출장을 갔을 때는 어렵게 시간을 내 그의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금번에 피소레를 만나는 곳은 엘비오 코뇨 와인 디너가 열린 파크 하얏트 서울의 코너스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활기 차고 열정이 넘치는 모습 그대로였다.


[엘비오 코뇨의 오너 와인메이커 발터 피소레]


엘비오 코뇨는 피에몬테에서 4대째 이어오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피소레의 장인인 엘비오 코뇨는 1950년대부터 바롤로의 라 모라(La Morra) 지역에서 와인메이커로 일하다 1990년 바롤로의 노벨로(Novello) 지역에 위치한 브리코 라베라(Bricco Ravera)에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피소레에 따르면 “당시 장인이 61세였으므로 와이너리 설립은 늦은 나이에 결심한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엘비오 코뇨는 바롤로의 전통적인 양조법을 고집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뜻을 계승한 것은 딸 나디아(Nadia)와 사위 피소레. 특히 피소레는 장인이 지켜오던 전통을 기반으로 엘비오 코뇨만의 혁신과 개성의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년 전 피소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네비올로의 강한 타닌을 부드럽게 만드는 '발효 후 침용' 단계에 대해 꽤나 자세히 설명했었다. 그런 그를 보며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꼼꼼하게 와인을 만드는 와인메이커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은 어떤지 묻자 피소레는 이렇게 역설했다.


“엘비오 코뇨는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와이너리다. 소비자의 입맛은 바뀐다. 요즘은 알코올이 적고 신선하며 마시기 편한 스타일을 원한다. 신세대 와인 애호가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 변화를 존중하면서도 우리는 엘비오 코뇨만의 개성을 추구한다. 플래그십 와인인 라베라도 20년 전과는 맛이 다르다. 오크를 덜 써서 신선함, 풍미의 깊이, 복합미, 긴 여운 등을 강조한다. 바롤로를 마셔 보면 와이너리마다 맛의 차이가 별로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엘비오 코뇨는 밭에서 채집한 야생 효모를 쓰고 밭별로 다른 네비올로 클론을 식재해 와인마다 개성을 살렸다.”


그러고 보니 와인 디너 안내문에 시음할 와인별로 네비올로 클론이 적혀 있었다. 이런 디너를 하면서 클론까지 밝히는 생산자는 처음이다. 클론마다 무슨 특징이 있는 걸까? 코너스톤이 심혈을 기울여 페어링한 음식과 함께 엘비오 코뇨의 와인들을 하나씩 시음하며 맛의 차이를 느껴 보았다.


랑게 아나스 세따 Langhe Anas-Cetta 2021



블랙타이거 새우 요리와 함께 즐긴 엘비오 코뇨의 첫번째 와인은 나세타(Nascetta)라는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뒤 50%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나머지 50%는 1,500리터 크기의 슬라보니안 오크에서 숙성시켜 블렌드한 이 와인은 은은한 훈연 향과 야생화, 노란 사과, 레몬, 자몽, 살구, 세이지, 로즈메리 등 다채로운 풍미가 마치 뫼르소(Meursault)를 연상시켰다. 나세타는 거의 멸종할 뻔한 것을 엘비오 코뇨가 되살린 노벨로의 토착 품종이다. 처음엔 비노 다 따볼라(Vino da Tavola) 등급으로만 출시가 가능했는데, 그땐 품종명을 레이블에 적을 수 없어 와인에 포도 이름과 비슷한 '아나스 세따(Anas-Cetta)'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새우와 궁합도 상당히 좋았지만 바디감이 묵직하고 산미가 상큼해 파스타, 닭고기, 돼지고기, 전 종류와 즐겨도 좋은 스타일이다. 이렇게 맛있는 와인이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니 부활시켜준 엘비오 코뇨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나세타 화이트 와인이 랑게(Langhe) DOC로 승격됐고 14개 와이너리가 생산 중이라고 한다. 랑게 나세타(Langhe Nascetta)는 15%까지 다른 품종을 블렌드할 수 있지만 레이블에 랑게 나세타 디 노벨로(Langhe Nascetta di Novello)로 표기된 와인은 100% 나세타로 만든다고 하니 참고하자.


바르바레스코 보르디니 Barbaresco Bordini 2020



피에몬테 바르바레스코 지역의 네이베(Neive)에 위치한 보르디니 포도밭에서 재배한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이다. 네이베는 바르바레스코 안에서도 우수한 네비올로를 생산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2004년 첫 빈티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생산해 온 이 와인은 현재 연간 생산량이 약 1만 병 수준이다. 네비올로 중에서도 람피아(Lampia) 클론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뒤 대형 슬라보니안 오크통에서 12~14개월 숙성시켜 출시한다. 질감이 매끄러워 마시기 편하고 잘 익은 딸기와 레드 체리의 달콤함이 풍성한 스타일이다. 트러플 버섯 리소토와 즐기니 음식과 와인의 풍미가 한결 풍부해지는 느낌이었다. 강한 타닌이 힘든 이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와인이며 버섯 잡채나 버섯 탕수육 등 버섯 풍미가 많은 음식과 즐길 것을 권하고 싶다.


바롤로 카시나 누오바 Cascina Nuova 2018


엘비오 코뇨가 바롤로 입문자용으로 자신 있게 권하는 와인이다. 수령 25년의 어린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네비올로로 만들어 과일향이 싱그럽고 생동감이 가득하다. 질감이 놀랍도록 매끄러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압권이다. 발터 피소레가 이 와인을 “미래의 바롤로 팬을 위한 투자”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롤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람피아 클론에 미케(Michet) 클론을 블렌드한 이 와인은 맛에서 딸기, 라즈베리, 자두 등 풍부한 과즙이 느껴지고 네비올로 특유의 복합미까지 겸했다. 한우가 들어간 토마토소스를 얹은 파케리 라자냐와 함께 즐겼는데 궁합이 환상적이었다. 파스타나 라자냐에 곁들일 와인을 찾는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바롤로 라베라 Ravera 2018



1990년대에 엘비오 코뇨가 와이너리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라베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지였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라베라는 엘비오 코뇨의 성공에 힘입어 노벨로 지역 안에서도 손꼽히는 크뤼(cru)가 됐다. 수령 80년의 고목이 가득한 밭에서 생산된 이 와인은 엘비오 코뇨를 대표하는 와인일 뿐만 아니라 라베라 특유의 테루아를 오롯이 보여준다. 부드럽고 깔끔하며 다채로운 아로마가 깊은 풍미를 이뤄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여운에서 이어지는 짭짤한 맛은 식욕을 돋군다. 발터 피소레는 “이곳 토질이 모래보다 석회질 위주고 해발고도가 380미터에 달해 일교차가 크며 바람이 많이 불어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전송이를 약 20% 포함해 발효했기 때문에 풍성한 붉은 과일 풍미와 함께 다양한 향신료 향이 느껴지고, 그런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내부를 많이 그을리지 않은 배럴을 사용했다. 덕분에 라베라를 맛보면 바롤로의 깊이와 복합미가 온전히 느껴진다. 곁들인 음식은 한우 등심이었는데 와인의 아로마가 흑마늘 소스의 깊은 풍미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오래 보관할 바롤로를 찾는다면 라베라를 추천한다.


바롤로 비냐 엘리나 리제르바 Vigna Elena Riserva 2017



엘비오 코뇨의 아이콘급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 피소레의 외동딸 엘레나의 이름을 땄다. 딸이 탄생한 해에 조성한 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레이블도 딸이 5살 때 그린 병아리로 장식되어 있다. 포도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되는 이 와인은 네비올로 클론 중에서도 로제(Rose) 100%로 만든다. 로제는 매우 희귀한 클론으로 수확 시기도 네비올로 중에서 가장 늦다. 껍질이 두껍고 핑크빛이 많이 도는 이 포도는 무척 예민하고 타닌이 많아 포도 안의 페놀 성분이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확해야 진가를 발휘한다. 그만큼 기르기가 까다롭고 양조도 힘들어 바롤로 생산자들이 기피하는 클론이지만, 엘비오 코뇨의 성공을 본 뒤 지금은 도전하는 와이너리가 많다고 한다. 맛을 보니 크랜베리와 체리 등 신선한 붉은 베리류의 아로마가 가득하고 장미의 향긋함이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가볍고 정교하지만 단단한 구조감도 매력적이었다. 블라인드로 시음을 했다면 바롤로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부르고뉴를 능가하는 섬세함이었다. 이 와인도 한우 등심과 함께 맛을 봤는데 강한 소스의 맛에도 불구하고 와인의 우아함이 전혀 음식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셀러에 보관 중인 엘비오 코뇨 와인을 찾아봤다. 2011년산과 2014년산 라베라(Ravera)가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2011년산은 피소레를 처음 만나고 구입한 것이고 2014년산은 엘비오 코뇨를 방문했을 때 사온 것이다. 이번에 피소레를 만난 뒤 기자가 와인을 구입했을까? 물론이다. 아나스 세타, 라베라, 비냐 엘레나가 셀러에 추가 입성했다. 엘비오 코뇨를 맛보면 소장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렇게 통장이 털리니 엘비오 코뇨는 위험하다. 하지만 이 또한 바롤로 애호가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기사 원문 :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20492